#2016. 1. 26. (토)
많은 눈이 내렸던 2016년 1월의 어느 날
문득 장항선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새벽 일찍 영등포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덜컹하고 좌우로 흔들리는 차체와
낮은 음역대의 디젤음이 잠시 눈을 붙이게 해주었습니다.
영등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지만
새벽 5시의 영등포는 토요일임에도 이른 출근길에 나선 사람들과
아침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조금식 깨어나는 풍경이었습니다.
영등포역에 도착한 것은 오전 6시 10분 경
이미 첫 차격인 무궁화호 1201열차(부산행)과
무궁화호 1551열차(장항선 익산행)가 지나간 뒤였습니다.
이제는 동해산타열차로 운행구간마저 바뀌어버린
서울~태백 간 O-Train(새마을 #4281)도 보이네요.
원래는 서울~제천순환이었지만 태백선 문곡~태백 사이에서
무궁화호 열차와 정면충돌해 1편성이 폐차되어버린 후
1편성 열차로 왕복 1편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영등포역 타는 곳의 풍경
ITX-새마을호 표식이 없는 이정표가 그대로 남아있어
2010년대 초반의 기억을 되살려줍니다.
승강장에 내려가보니 역의 절반이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아예 서울방면 승강장은 형광등조차 켜지 않아
여러모로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 같습니다.
이윽고 서울 발 부산행 ITX-새마을호 1001열차가 도착했습니다.
수도권에서 부산으로 가는 일반열차들 중 제일 빠른 열차로
새벽 출발(영등포 06:20 발)임에도 타는 승객들이 많았습니다.
짧게 숨을 돌린 ITX-새마을호는 다시 부산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영등포역에는 여러 전동열차들도 운행하고 있습니다.
위 영상에서 나오는 열차는 용산 발 부평급행 제K1251열차로
당시 운행했던 저항제어 전동차에는 부평급행 표시가 없어 그냥 부평행을 띄우고 운행하고 있습니다.
몇 대의 KTX만 지나갔을 뿐인 고요한 영등포역.
코레일 수도권서부본부 너머로 붉어져가는 하늘이
점점 아침이 밝아옴을 보여주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당시 영등포역의 호차위치 표지.
교체가 이미 이루어진 표지판으로
새마을호 자리에 ITX-새마을호가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이윽고 대천역까지 탈 장항선 무궁화호 제1553열차가 들어옵니다.
이미 눈을 헤치고 왔는지 하얀 눈을 잔뜩 묻힌 채 왔는데
고요한 영등포역을 깨는 웅장한 디젤엔진 소리가
서정적인 느낌마저 줍니다.
역으로 들어오는 디젤전기기관차의 뒷모습.
특이하게도 새마을호 도색을 하고 있는 330kW급 유선형 발전차가 편성되어 있는데
저 때야 새마을호가 현역이라 가끔 볼 수 있었지만
퇴역한 지금은 상대적으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차창 밖이 밝아졌습니다.
전 날 눈이 많이 내린 터라 완전 하얀 세상이 되어있네요.
천안역과 이후 장항선에 접어들어 아산역 부근.
하얀 눈으로 덮여진 세상과 아침의 포근한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듯 했습니다.
사실 전 날에도 눈이 많이 내렸고
이 날도 일부 지역에 약한 눈이 있을 것으로 예보되었지만
남쪽으로 향할수록 눈발이 굵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신례원역과 예산역.
전형적인 눈 내린 시골 풍경이었습니다.
홍성역에 도착하자 이미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설경을 찍을 때에는 오히려 눈이 내려주는 것이 좋지만
너무 많이 내리면 렌즈와 장비에 좋은 영향이 없기에
이렇게 적당히 내려주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경 촬영은 항상 몸이 시리기 마련이죠.
하지만 따스한 아침햇살을 보고있으면 조금 포근한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의 사진도 꽤 좋아하는 편이죠.
드디어 대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저를 태워준 무궁화호 제1553열차는
마저 익산을 향해 먼 길을 떠나갔습니다.
장항선 대천역.
선로 밑에 역사가 있는 선하역사(線下驛舍)로
인근 대천해수욕장이나 보령머드축제 관광객, 그리고 대천시민을 수용하기 위함인지
역사의 규모는 쾌 큰 편이었습니다.
장항선 내 모든 여객열차가 서는 곳이니 당연하지만
당시 대천역 바로 앞, 그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어
마치 버스정류장 외에 아무 것도 없었던 군산역을 보는 듯 했습니다.
다시 대천역 승강장 위로 올라와서.
하얀 산과 마을을 풍경으로 두 출발신호기가 붉은 신호를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2023년 1월 현재도 그렇지만 장항선은 단선 철도로
교행역에서 반대편 열차가 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정지 신호를 표시하는게 일반적입니다.
이윽고 도착한 용산행 새마을호 제1154열차.
LED 전조등에 쇠창틀로 교체하고, 그마저도 폐차가 진행 중인 지금과는 달리
그 때의 한국철도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1호차(특실) 측면의 차량번호와 행선판
뷹은 특실의 좌석과 대조되는 새마을호의 푸른 도색이 일품입니다.
2018년 새마을호 퇴역 당시 새마을호 특실을 왕복으로 탔었는데
안락한 특실 좌석의 촉감과 안락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조금 뒤 역을 떠나갑니다.
대천역을 떠나는 사진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2017년 이래 유튜브 채널의 배경사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시금 대합실 앞으로 내려와서 본 출발안내기.
다른 역들 대비 색감이 조금 이상한 것은 둘째치고
눈 때문인지 장항선 열차들이 연쇄적으로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단선철도는 한 열차가 지연되면 다른 열차들까지 연쇄적으로 지연될 수 있어
분명히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결국 10분 지역을 받고 들어온 익산행 무궁화호 제1555열차.
7400호대 디젤전기기관차의 맏형급인 7402호가 견인하고 오네요.
선로 주변에 쌓여있는 눈을 날려 연출하는 저 모습이
세삼 감성적이면서 속도감 있는 장면을 연출해주었습니다.
대천역 상행선 승강장의 역명판
역명판 뒤편으로 보이는 논밭과 측선 승강장이 모두 하얗게 되어
파란색 바탕의 역명판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차디찬 칼바람이 승강장에 불어온 탓에 손을 비비며 오들오들 버티자
얼마 뒤에 5분 지연을 받은 용산행 무궁화호 제1556열차가 들어옵니다.
당시 무궁화호 제1556열차는 특이한 운행계통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선 호남선 서대전역을 7시 50분에 출발해
익산역에 8시 57분 도착, 여기서 3분 간 정차한 뒤에
장항선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 용산역에는 13시 정각에 도착했습니다.
보통 서대전에서 용산으로 갈 때 호남선, 경부선을 타는 것과 비교하면
무언가 크게 돌아가는 열차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저런 장거리 무궁화호가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
이제 한국철도에서는 저런 특이한 경로의 열차를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556열차의 승차권은 좌석으로 이미 발권해놨지만
청소역 인근에 이르자 먼저 객실 통로로 나와 선 채로 갔습니다.
둥근 출입문 너머의 세상도 보령까지 오면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온통 하얀색이라
분명 오늘 좋은 사진이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장항선 청소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지붕에 눈이 많이 쌓여있네요.
타고 온 용산행 무궁화호는 짧은 정차 후에 광천 방향으로 떠나갔습니다.
본선(1번선) 승강장 쪽만 제설한 흔적이 나름 신선(?)하네요.
청소역의 설경과 '오서산 포인트'의 사진들은
다음 글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글] 2016.01.29.
[이동 및 업데이트] 202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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