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에 이어서...
자동차를 타고 경주시내에 들어오니 이미 저녁이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에만 해도 무궁화호 열차로 전국을 누볐지만
경제적 여력이 생기고 몸이 무뎌지는 지금은 차를 타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사실 차가 있으면 열차가 몇 없는 로컬선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숙소에 체크인 한 후 저녁을 먹고, 경주역※으로 향했습니다.
(2023년 현재 폐역)
붉은 외벽 위에 짙은 갈색의 기와가 쌓인 한옥식 역사로
김유정역이나 전주역 등도 한옥식으로 역사를 건축한 바 있습니다.
경주역은 2차 여행 때 한 번 더 가니까
자세한 소개는 2차 여행기를 쓸 때 하는게 좋겠죠?
경주역사의 역명판은 흰 배경에 한옥과 어울리는 서체를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한 차례 바뀐 전주역의 역명판은 낮에 보면 잘 안보이는데,
경주역의 역명판은 흰 바탕 덕택에 멀리서도 잘 보이곤 했습니다.
경주역사 내부는 한옥식 건물의 구조를 재현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역사의 역면이 회색 또는 흰색 계열의 도장이나 타일을 쓰는데 비해,
경주역은 황토빛 도장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죠.
당시 부전, 포항 방면의 시각표.
불국사역, 호계역 등 지금은 사라진 역들과 몇몇 열차들이 보입니다.
그 때에는 아직 코로나19가 계속 전파되던 중이었음으로
사진 좌측의 테이블에서 열감지기로 체온을 측정하는 진풍경도 있었죠.
승강장 측에는 한자 역명판을 걸어놓았습니다.
안동역의 한자 역명판과는 달리 이 역명판 하나만 있네요.
당시 경주역사 앞쪽에는 "사랑의 자물쇠"를 걸 수 있는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폐역된 지금 저 자물쇠가 온전히 남아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승강장으로 향하는 지하보도에도 마스코트를 붙여 놓았네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하얀색 하트가 인상적입니다.
한편, 경주역 부본선에는 황산화차를 연결한 철암행 3966열차가 정차해 있었습니다.
황산 13량, 유개화차 2량, 차장차 1량 편성으로,
화차내부가 텅 빈 공차(空車)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황산은 위험물로서 기관차와는 3량 이상, 호송차(차장차)와는 1량 이상 격리해야 하지만
이 황산열차는 황산을 싣고 있지 않은 "공차"라서 격리할 필요가 없겠죠.
(한국철도공사 운전취급규정)
한옥역사와 걸맞게 승강장의 울타리나 기둥도 한옥식 문양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문화재 발굴조사 때문에 전부 철거될 예정이거나, 철거되었으니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네요...
3966열차의 차장차와 경주역 승강장.
원래 저 노란 차장차는 소화물차로 운행되다 차장차로 개조되었는데,
현재 옛 경주역사는 "경주문화관1918"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지금 보면 동방상련(?)의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조금 기다리니 동대구행 RDC 디젤동차가 들어왔습니다.
승차할 열차는 부전역 17:07 출발, 동대구역에는 20:02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1790열차로
전체 4량 중 선두차 1량만 동해선(영덕군) 랩핑을 한 것이었습니다.
디젤동차와 역사, 그리고 2달 후(당시 기준)에 사라질 풍경을 담은 뒤 열차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교행할 열차가 조금 지연되고 있어 출발까지는 더 걸렸습니다.
단선철도의 단점을 한 껏 느끼며 기다리니 곧 경주역을 출발했습니다.
출발 도중에 찍은 차내.
랩핑이 차내 전체를 덮은게 아니라, 운전실이나 통로문 벽측 부근에만 되어있었네요.
RDC 디젤동차나 원본이 된 CDC 디젤동차의 선두차 창문이 저렇게 큰데,
원래 운전실이나 앞 전망을 볼 수 있게금 설계한게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철도공사에서 직접 앞 전망을 볼 수 있는 열차는 없습니다.
도시철도는 무인 경전철에서 앞 전망을 볼 수가 있죠.
디젤 내음을 맡으며 조금 달리니 서경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간이역 느낌이지만 그래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조금 있었습니다.
내려서 디젤동차의 옆을 보니 도장이 깨진 부분이 많네요.
차나 사람이나 늙어가면서 여기저기 갈라지는건 멈추기 어렵나 봅니다.
그렇게 열차를 떠나보내고, 서경주역 역사를 잠시 빠져나왔습니다.
역사 밖에서 서경주역으로 향하는 긴 계단이 있었습니다.
물론 옆에 다른 길이 있긴 하지만, 어둠 속에서 역으로 향하는 계단을 보면
무언가 감성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서경주역은 1985년 7월 서경주신호장으로 출발했지만,
1993년 여객취급을 시작하고, 1995년 보통역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역명이 금장신호장으로 바뀌었다가 2009년 1월 대개편 때 다시 돌려받기도 했죠.
2023년 현재는 금장리에서 하구리로 역사를 옮겨 계속 영업 중이지만,
사진 속의 옛 서원주역사는 기약 없이 방치되고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작은 역들이 다 그렇듯, 화장실은 역사 밖으로 나가면 바로 옆에 붙어있었습니다.
비가 와도 이용할 수 있도록 지붕을 부설했네요.
서경주역사 내부.
당시 역 규모에 비해 정차하는 열차가 상당했습니다만,
역시 작은 역이라 시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역사 중앙에 튀어나온 창이 눈에 들어오네요.
늦가을 밤의 서경주역은 조금 서늘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출입문 밖의 서경주역 구내는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한 풍경이 흘러만 갔고...
열차 출발 10분 전에야 역무원이 승강장 방면의 문을 열어주기 때문에
의자에 앉아 조금 기다렸습니다.
역 구내에서 바라본 서경주역사.
붉은 벽돌로 마감된 작은 역사였습니다.
아까 맞이방에서 본 큰 창이 출입문 위로 뚫려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지방의 작은 역들 중에는 역명판의 간판을 바꾸지 않고 내용만 새로 붙인 경우가 많은데,
서경주역은 그나마(?) 신식 역명판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촬영한 지 약 2달 후의 서경주역은 이 때와 완전 다른 모습이 되어버렸죠.
지방의 작은 역은 항상 역사와 승강장 사이 건널목이 있었습니다.
"좌우 확인". 열차가 올 때는 역무원이 나가 사람들을 통제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좌우를 살펴달라는 부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서경주역의 승강장.
동해선과 중앙선이 갈라지는 정차역이라 그런지 구내 선로의 규모는 컸지만
지붕이 없는 이 승강장에서만 승객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멀리서 서경주역을 보니 바로 옆 선로에 승강장 부지가 있더군요...
앞서 말했듯 서경주역 승강장은 지붕이 없었습니다.
사실 지붕이 없는 역 승강장은 생각보다 좀 있는 편으로
중앙선에서만 신녕, 화본, 탑리, 의성역 정도가 있네요.
(2023년 기준)
서경주역의 역명판과 타는 곳 표지는 이미 세월을 바로 맞은 탓에
푸른 빛이 바래고 여기저기 열화된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KTX가 서는 신경주역이 경주역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니
역명판에 적힌 역 중 건천역의 이름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셈이 되겠네요.
물론 역사(驛舍)로 보면 역명판에 적힌 모든 역이 다 사라졌지만...
서경주역은 경주 시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역사 너머로 아파트가 보이는 이질적인 풍경이었습니다.
과거 경춘선의 화랑대역과 신공덕역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요?
이번에도 역시 열차가 조금 늦어져 승강장에서 풍경을 바라봤습니다.
산의 중앙을 철길이 칼로 자른듯한 모양새이고, 청색 하늘은 하늘의 흔적만 보였습니다.
사실 1899년(경인선) 부터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들은
웅장한 산의 암반층을 뚫어 긴 터널을 기술이나 여력(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산을 끼고 우회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는 합니다.
여러 사람과 여러 장비로 치악산을 넘은 중앙선 옛 금교~치악~창교신호장 구간은
그야말로 엄청난 희생과 맞바꾼 난공사였겠죠...
잠시 뒤, 청량리에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 1603열차가 들어왔습니다.
고요한 간이역에 울려퍼지는 안내방송과 도착 직후가 나름 인상적입니다.
중앙선 계통 무궁화호라 일부러 1호차를 끊었는데
예상대로 새마을호에서 격하된 옛 특실 객차가 걸렸네요.
(2017년 폐지)
이 열차에 올라 서경주역을 출발했고,
동해남부선 좌천역을 향해 떠나는 여행은 다음에 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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