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에 이어서…
벽도산을 내려와 영천역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국도를 따라 달리던 중, 자동차 뒤편으로 무궁화호가 달려오고 있어 일단 인근 공터에 차를 세웠습니다.
일 4회 밖에 없는 청량리 ↔ 부전 무궁화호 중 마지막 상행 편인 1604열차입니다.
이미 전성기가 지났음을 보여주듯, 잡초만 무성한 들판 뒤를 달리는 열차는 겨우 4칸뿐이었습니다.
(중앙선 무궁화호는 편성 단축 전엔 6~7량으로 운행했다)
이윽고 모량역에 도착했습니다.
1922년 협궤 철도로 개통했지만,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따라 표준궤로 개궤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선의 다른 간이역들과 함께 2007년 6월 1일부터 여객취급을 중단했습니다.
다행히 중앙선 복선화 이후에도 '모량'이라는 이름은 살아남았지만, 대신 신호장으로 격하되었습니다.
구 모량역사는 표준궤 개궤 때 함께 건설된 것입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지는 못했지만 여객취급 폐지 직후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출입문은 무려 목재로, 여객취급 중지 이후 파손되었는지 철판을 덧대 놓았습니다.
『즐거운 여행은 안전한 철도로』 같은 철도청 시기의 구호 표지도 출입문 양쪽에 남아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안쪽을 살짝 들여다보니, 집기류가 사라지고 시간표가 가려진 맞이방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시간표를 철거하지 않고 종이로 대충 덧대놓은 게 포인트네요.
목재 창틀로 분리된 두 개의 매표소도 꽤 귀합니다.
현재 여객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간이역들은 통유리로 바꾼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모량역 앞에는 철도관사로 쓰였을듯한 민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진 곳에 있거나 규모가 있는 역들은 침실이나 주변에 철도관사를 갖춘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은 중앙선 건천역으로 향했습니다.
1917년 협궤 경동선으로 개통했다가 표준궤로 개궤된 점은 인근 역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근 모량, 아화역과 다르게 그 역사를 잇지 못하고 복선화와 함께 폐지되었습니다.
건천역의 모든 기능은 아화역으로 통합되었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자세히 둘러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 아래로 바삐 달려나가, 중앙선 아화역에 도착했습니다.
1918년에 개통했고, 인접한 역들과 마찬가지로 표준궤 개궤를 즈음해 역사를 새로 지었습니다.
(2021년 12월 28일, 심곡로 41에 있는 신 아화역사로 이전)
건천역과 비슷한 시기에 건설되어 외형이 유사하지만, 아화역은 모든 창문을 철판으로 덧대 놓았습니다.
아화역은 2008년 1월 1일부터 여객취급이 중지되어 신호소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중앙선 복선화에 힘입어 새 역사로 이전함과 동시에 여객영업을 재개하게 되었습니다.
녹슬어가는 역명판과 다르게 구 아화역에 내려진 선고문은 비교적 선명했습니다.
시설 사무소 등으로 사용되는지 아화역의 부속 건물이나 화장실은 비교적 깔끔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깔끔할 뿐이지, 화장실 쪽은 잡초가 많이 자라 있었습니다.
이번 첫 번째 여행의 종착역은 중앙선 임포역입니다.
인접 역들과 같은 시기에 개통하고(1918), 함께 표준궤로 개궤(1938)했지만 한국전쟁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개궤 당시 역사는 공산 게릴라에 의해 전소되어 벽돌로 새 역사(驛舍)를 올렸습니다.
아화역과 함께 여객취급이 중지(2008.01)된 이후 폐지될 때까지 여객을 받지 못했습니다.
역구내에는 버려진 우물이 남아있었습니다.
상수도가 없는 지역은 지하수를 퍼올려 써야 했으니, 상수도 연결 전에 쓰였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열차는 동대구 발 부전행 무궁화호 1787열차입니다.
미니미니카페가 2량이나 연결된 편성이 임포역을 빠르게 통과해 지나갔습니다.
일몰 후의 오지에서는 열차를 촬영하기 매우 힘들기 때문에 이 열차를 마지막으로 했습니다.
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모든 문과 창문이 막혀있고, 역사 앞 비석만 쓸쓸히 남아있는 임포역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딘가 부족한 것 같은 미완의 끝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임포역 주변에는 번화가가 없으니 영천역까지 가서 식사를 하고 집결지인 대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여행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연말에 시간을 내어 같은 철길 옆을 달려나가게 됩니다.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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