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6월의 어느 날. 뜻을 모아 아침부터 영주역을 찾았습니다.
따스한 햇살 아래에 우뚝 선 영주역은 한창 공사 중이었는데,
건물 외관 공사는 거의 끝났고 내장과 조경 공사에 바쁜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미 승차권을 발권해 갖고 있었던 터라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매표소 위에 붙은 열차행선안내기에 V-Train이 표시되자 승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죠.
역사와 거의 맞닿아있던 1, 2번 승강장으로 가자 이미 열차가 서 있었습니다.
오른쪽에는 영주 발 김천행 무궁화호 1804열차로, 출발시간이 임박(08:14發)한 상황이었습니다.
왼쪽에는 이번에 이용할 영주 발 철암행 새마을호(V-Train) 2511열차가 잠시 멈춰서 있었죠.
이윽고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가 서서히 승강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약 10년 전에 봤던 것과는 달리 산타 래핑을 제거해 깔끔한 인상이었습니다.
승강장에는 이미 여러 승객들이 열차를 마중하러 나와있었습니다.
따스한 초여름의 햇살 아래 멈춰 선 객차를 뒤로하고, 무궁화호 1804열차는 김천으로 떠나갔죠.
백두대간협곡열차(V-Train) 제2511열차.
사실 V-Train의 주 무대는 분천~철암 구간이지만, 이 구간을 다니는 여객열차가 적고 차량 정비시설이 없습니다.
영주역은 영동선, 중앙선, 경북선이 서로 맞닿아있고 영주차량사업소가 있죠.
그래서 V-Train의 첫 번째와 마지막 열차는 영주~철암 구간을 다니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 KTX-이음이 영주역을 거쳐가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봐야겠죠.
영동선의 반대편 구간인 분천~강릉 구간은 동해산타열차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열차 출발시간이 다가올수록 소화물차를 개조한 객차에는 여행의 설렘을 안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주로 가족 내지 친지 단위로 열차에 오른 경우가 많았고,
높은 가격의 운임요금 때문에 단거리를 이용하려는 승객은 적었던 것 같습니다.
(V-Train은 새마을호 특실 운임요금을 받고 있다)
V-Train의 객차 시설은 전 글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하지만 시내버스에서나 쓸법한 폴딩식 출입문을 설치한 차량인 점은 특기할만합니다.
한국철도에서는 매우 드문 방식인 것도 한몫하고요.
소화물차의 출입문은 수동문이라, 새로 설치된 출입문취급장치(스위치)는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이윽고 출발시간이 되자 V-Train은 영주역을 출발해, 영동선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영상은 전 구간에 걸쳐 촬영한 영상을 모은 것입니다.)
전 글에서 이미 소개했지만 전망창은 나름 인기가 높은 시설입니다.
영주역 출발 직후부터 이미 여러 명의 어린이들이 전망창을 통해 후부 전망을 보고 있었죠.
영주 시내구간(영주~북영주신호장)을 지날 때 찍은 것이라 바로 옆에 민가가 붙어있습니다.
북영주신호장을 지나 시내 밖으로 나오면 푸른 논밭과 초원이 펼쳐집니다.
분천역까지는 승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해 볼 수 있었습니다.
소화물차를 개조하면서 창을 높고 넓게 시공했는데, 협곡은 물론 로컬선 풍경을 구경하기에 좋았습니다.
2인석에 홀로 앉아 등을 기대고 멍 때리기에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영동선의 신호장 중 하나인 문단신호장.
이 역을 지나면 영주시를 벗어나 봉화군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창문을 고정하는 레버를 누른 채 밑으로 내리면,
레일 연결부를 지날 때마다 들리는 '따당'하는 소리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보다 선명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과거 통일호나 통근열차에나 사용되었던 2인석의 '전환식 좌석'도 볼거리입니다.
등받이를 당기거나 미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되어있죠.
그래도 봉화역까지는 상당한 숫자의 민가와 도로가 보였지만,
봉화 이후로는 산과 논밭밖에 없는 전형적인 로컬선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영동선의 운행속도가 비교적 빠른 편이 아니기 때문에 산골의 푸른 정경을 마음껏 볼 수 있었죠.
두 번째 정차역인 춘양역입니다.
봉화역도 마찬가지였지만 영주/분천역과 달리 타고 내리는 사람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영동선은 태백산맥 등 산지 지형이 많아 생각보다 많은 수의 터널이 있습니다.
열차가 터널에 들어갈 때면, 천장에 붙은 야광 장식이 선명하게 빛나는 효과를 보여줍니다.
무궁화호 정차역 중 하나인 영동선 임기역.
이 역을 전후해서 협곡 구간이 자주 나오게 됩니다.
영동선의 협곡 구간.
백두대간협곡열차의 이름값대로 곳곳에서 협곡 지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영동선 무궁화호를 타도 볼 수 있지만, V-Train의 느린 속도와 넓은 창으로 보는 느낌이 다릅니다.
V-Train의 주요 정차역인 영동선 분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앞선 봉화, 춘양역은 정차시간이 2분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무려 20분이나 머물게 됩니다.
분천역 승강장에는 백두대간협곡열차 개통 기념 비석이 남아있습니다.
분천역과 그 일대가 '분천산타마을'로 조성되면서 승강장과 역 주변에 각종 시설과 조형물들이 들어섰습니다.
이에 맞춰 분천역사(驛舍)와 부속 건물도 새 단장을 했고, 지붕도 붉은색으로 새로 칠했습니다.
처음 방문했던 2014년과 비교하면 더 깔끔해지고, 가족/친지 단위 여행객들이 즐길 거리가 늘어났습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역 앞마을에도 가게들이 좀 늘어났죠.
정차시간이 길기 때문에 거의 모든 승객들은 열차에서 내려 분천산타마을 관광을 하거나, 열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습니다.
도중에 V-Train에 올라 철암으로 가려는 승객들은 손에 간식거리를 들고 열차에 오르기도 했었죠.
(물론 2512, 2513열차는 분천역이 시종착역이다)
그래서 필자도 분천역에서 V-Train을 비교적 자세히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차체 단부에 남은 소화물차의 흔적과 차량 패찰을 담아봤습니다.
분천역 출발 이후, 자동방송과 함께 느릿느릿 협곡 구간을 달린 열차는 양원역에 정차했습니다.
분천, 승부, 철암역과 달리 주변에 관광시설이 없지만 정차시간이 넉넉하게 잡혀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 양원역사(兩元驛舍) 하나만으로 길게 정차할 이유가 있는 것이죠.
양원역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아담한 역사에 주목한 영화 <기적> 등 여러 미디어 매체에 등장한 덕분인지,
차로 접근하기 힘든 오지에 있음에도 꽤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영주행 V-Train(2514열차)은 봉화/춘양역을 통과하지만 이 역만큼은 정차하기도 합니다.
양원역을 떠나면 또다시 협곡 구간이 펼쳐집니다.
절경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30km/h 정도로 감속하는 구간이기도 하죠.
영주~분천 구간과 달리 만석이라 협곡 구간이 보일 때마다 감탄사와 셔터음이 객차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협곡 구간을 지나는 도중, 승부역에 정차했습니다.
양원역과 같이 10분 동안 정차하게 됩니다.
승부역의 특징이라면 역구내에 먹거리 장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각종 나물과 채소, 그 외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죠.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어 그 자리에서 구입한 먹거리를 드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승부역은 양원역과 달리 차량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마을과 조금 동떨어진 곳임은 같습니다.
국도와 승부역을 잇는 작은 콘크리트 교량은 차로 넘어왔을 때 조금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죠.
승부역 구내에는 영암선 철도 개통 기념비※가 있지만 거기까지 갈 시간은 부족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540호, 현 영동선)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 승강장과 달리 역무시설과 구내 선로는 평온했습니다.
열차 출발시간이 다가왔지만 관광에 집중한 나머지 승객이 모두 열차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결국 승하차 지연으로 승부역을 정시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던 기억이 나네요.
영동선의 협곡을 계속 돌아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는 석포역을 통과했습니다.
여기를 지나면 이제 다 온 셈이죠.
영주역을 떠난 지 약 2시간 30분… 종착역인 철암역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빠르게 내린지라 순식간에 객차 안은 텅 비었습니다.
정차역마다 세워진 V-Train 표지와 객차.
영주역을 아침에 출발했건만 철암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점심에 근접해 있었습니다.
역구내에서 풍겨오는 석탄과 디젤의 내음, 지면의 열기가 지금이 초여름임을 알려주는 듯하네요.
11시 5분에 철암역에 도착한 2511열차는 30분 뒤에 분천역을 향해 다시 떠나게 됩니다.
승객이 모두 내린 뒤, 기관차를 분리해 1호차 방향에 다시 연결하는 (입환)작업을 합니다.
이 입환작업을 보려고 필자를 포함해 승강장에 남아있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영동선의 중추역 중 하나로 석탄을 포함한 각종 화물을 주로 취급하는 철암역...
중앙선 복선전철화 전의 영주역이 떠오르는 전신주와 지하 통로를 지나 역 밖으로 나왔습니다.
철암역을 기점으로 철암역 부근의 관광지와 영동선 스위치백을 따라 떠나는 여정은 다음에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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