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편에 이어서…
역 앞에 5일장이 열린 중앙선 풍기역에 도착했습니다.
중앙선 새마을호 개업 때부터 필수정차역일 정도지만 그에 비해 역사 규모는 아담(?)합니다.

풍기역 부근에 여러 철도 관련 전시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중 복선전철화 과정에서 철거된 객차 휴게실 쉼터부터 방문했습니다.
유선형 새마을호 객차, 그중 DHC 디젤동차의 부수객차를 쉼터로 개조한 시설로 풍기역 1번 홈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문했을 때에는 출입문이 모두 잠겨있고 객실 내부도 어두워서 운영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객차 차체에 지역 특산물 소개를 담은 랩핑을 했었습니다.
크게 풍기인삼과 단산포도, 영주사과가 있었고 캐릭터와 함께 그려두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이기지 못했는지 랩핑이 벗겨진 곳이 많았습니다.
벗겨진 틈으로 현역 시기 새마을호 도색이 드러나 있었네요.


당시 쉼터로 개조된 부수객차는 326호와 328호였습니다.
모두 DHC P(B)형으로 일반(보통)실 차량이었지요.
차체 외에 대차나 하부기기에 각종 표시가 남아 있어서 출신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영광과 다르게 쓸쓸한 말년을 보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렇게 구 새마을호 객차를 활용하고 있는 곳이 아직 여러 곳 남아있기는 하지만…

객차를 지나 급수탑 쪽으로 다가가면 작은 공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무료 주차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관광버스나 예천군 농어촌버스가 잠시 대기했다 떠나기도 했었네요.


공원에는 철길도 깔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선전철화 과정에서 사진 속의 주차장과 함께 철거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주차장은 아스팔트 포장을 다시 하고 열었긴 합니다.


풍기역 급수탑에 도착했습니다.
풍기역 철도공원을 구성하는 시설 중 하나로, 외벽에 인삼 홍보 도색을 해두어서 독특한 인상을 주고 있었습니다.
풍기역이 중앙선의 정중앙인 것도 있지만 희방사 너머 높은 죽령고개도 영향이 없잖은 것 같습니다.
열차를 타고 풍기역에 접근하면 급수탑이 제일 먼저 눈에 띄기 때문에, 이걸 보고 영주에 가까워졌음을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내부 시설이 운영한 적을 못 본 것 같네요.
그 옆에는 건널목 경보기와 차단기를 갖다 두었습니다.
풍기~안정 구간, 동양대로 철교와 역 사이에도 작은 건널목이 하나 있었지만
복선전철화 과정에서 제일 먼저 철거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풍기~희방사 구간 건널목은 노선 이설 직전까지 계속 살아남았다)

그 급수탑 옆에는 과거 서울교외선을 달리던 증기기관차 1량이 쓸쓸히 서 있었습니다.

바로 901호 증기기관차입니다.
1994년 장춘차창에서 제작한 텐더식-석유식 증기기관차로 철도청에서 도입한 국내 최후의 증기기관차입니다.
수색기관차사무소 소속으로서 교외선 주말 관광열차의 견인기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IMF 외환 위기와 고유가, 증기기관차인 특성상 어려운 유지보수,
그리고 장흥유원지 등 교외선 연선 관광지의 몰락이 겹친 끝에
2000년 5월 15일을 끝으로 관광열차가 폐지되며 원래 목적을 잃었습니다.
폐지 후에는 수색기관차 소속 입환기로 아주 가끔 운용되다가,
결국 2009년 6월에 운용을 포기하고 7217호 디젤전기기관차와 함께
체험학습장 신설이 계획된 경북선 점촌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다만 체험학습장 계획이 취소되어 7217호는 고철 매각되었고 901호만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죠.
그러다 2011년 2월 28일에 화물열차에 연결되어 영주역을 경유해 풍기역으로 이동했고,
급수탑 옆에 현재의 부지를 마련해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풍기역에 왔을 때만 해도 무려 차적이 남아있었으나, 2014년 경에 차적에서도 삭제되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는 차량이었지만 사실상 방치에 가까웠던 상태였습니다.
이 사진이 촬영된 2017년 이후에도 유지보수가 전혀 안되었는데,
2025년 경에 가보니 폐차라고 해도 믿을만한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히려 인접한 영주시내와 안동 소재 대학교에 보존된 차량의 상태가 더 좋아 보였을 정도면 말이죠…
(가톨릭상지대학교 - 2100호대 디젤기관차, 경북전문대학교 - 1000호대 저항제어 전동차)

901호의 중국 형식명은 상유(上游) 11형 증기기관차입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 JF-6형 증기기관차를 모태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래서 처음 배로 들여왔을 때는 SY11호, 나중에는 그냥 11호 차량번호판을 달았다가 최종적으로 901호로 차적에 들었습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 소속 증기기관차 특유의 전조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밑에 붙은 차량번호 표지에 녹이 슬어있네요.

만철 JF형 계열과 마찬가지로 차륜배치가 2-8-2로 되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미카형 증기기관차도 2-8-2 배열로 되어 있었네요.
도입했을 때만 해도 차륜축 부분에 붉은 도색이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온통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나마 차륜에 칠해놓은 흰색이 온전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험난한 역사를 거쳐 풍기에 전시되었지만 방치에 가까웠습니다.
2025년 기준 근황으로 하면 방치에 가까운 게 아니라 방치가 맞겠네요.
퇴역 당시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게 다행이지만, 퇴역 이후에 유지보수를 한 번도 안한 것 같은 상태가 문제였습니다.



선륜(전륜)과 면당 4개의 큰 동륜, 실린더와 크랭크, 크랭크로드, 기어 같은 구동부는 10여 년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차륜에 흰색, 차축 부분에 빨간색을 칠해놓았지만 곳곳이 벗겨지고 녹슬어 있었습니다.

판스프링이 걸려있는 후륜도 그대로였습니다.
이제 보니 각 차륜에 빨간색 수용바퀴구름막이(차륜지)를 걸어놨네요.
평지에 전시했다지만 기관차가 구르면 큰일이 나므로 걸어놨던 것 같습니다.

901호는 운전실 창문이 옆으로 돌출되게 설계되어 있는 점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더 넓은 운전 시야 확보를 위한 고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운전실 창문 밑에 901호 표시가 남아 있네요.


계단을 제거하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운전실 위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굳이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밑에서 바라봤는데, 그래도 운전설비는 그대로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운전실 좌석은 그야말로 썩어 들어가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네요.

901호 증기기관차는 석탄이 아닌 석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탄수차 입구 모양이 조금 달랐습니다.
원래 그랬는지, 점촌역으로 이동할 즈음에 바뀐 건지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요.

반대편에서 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옆으로 돌출된 운전실 창문이 눈길을 끕니다.
방치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화재 예방을 위해서인지 소화기 2개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차량번호 표지와 제작사 패찰도 사진으로 남겨둡니다.
중국산 차량이라 그런지 제작사 패찰도 중국어로 적혀 있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901호 증기기관차의 탄수차 부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석유를 사용하는 차량이기에 석탄을 싣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도 증기기관차 외형을 한 디젤기관차와 다르게 동작 방식은 증기기관이므로 물탱크가 있어서 물을 넣는 부분은 있습니다.


뒤쪽에서 보면 전조등과 후미등, 그리고 연결기와 공기관 등이 남아 있습니다.
원판인 SY형 증기기관차는 역행운전(장폐단)을 위해 운전실에서 뒤를 볼 수 있게 구조이나,
901호는 덮여있어서 운전실 창문을 통해 봐야 했을 것 같습니다.

901호 증기기관차는 중국산이기 때문에 현지화(?) 하기 전에는 많은 부분이 중국어로 적혀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에서 도입된 차량이 섞여있는 EMD GT26CW(-2)는 영어 일색인 걸 보면 말이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동통 차단콕크를 비롯해 기관차 곳곳에
정비사가 수기로 적어놓은 명칭이나 방향 표시가 남아 있었습니다.


901호 증기기관차를 한참 찍고 있었을 때, 뒤편 관광버스 쪽에서 어르신 한 분이 오셨습니다.
촬영 목적과 소속을 묻더니, 대뜸 본인이 901호가 현역이던 시기 수색기관차에서 근무했다고 소개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증기기관차 도입 때 기관사들을 선발해 교육했던 것부터, 기관차의 각 부분을 가리키면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셔서 이해하는데 움이 되었습니다.
들으면서 휴대폰에 메모도 해두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었네요.
(입환기로 격하된 시절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러나 본 블로그의 카테고리 리스트를 보면 유추하실 수 있겠지만, 망실된 데이터에 그 메모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모로 아쉽네요.
노인은 도서관과 같다던 아프리카의 격언이 떠오릅니다.


수색기관차 출신 어르신과 헤어진 후, 901호 증기기관차 옆 승강장(풍기역 1번 홈)에
안동 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1606열차가 잠시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일정이 널럴할 줄 알았으면 1606열차를 타고 갈까 했지만, 체념하고 충북종단열차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다른 편에서 언급하겠지만, 제천에서도 특실 좌석이 없다는 이유로
태백선의 1640열차 대신 그다음에 온 중앙선의 1608열차를 탔습니다.

무궁화호 1606열차가 청량리를 향해 떠나가자 도로 썰렁해졌습니다.
역 광장에서 어르신들이 트로트를 열창하는 노랫가락만이 바람을 타고 흘러왔을 뿐입니다.

901호 증기기관차에서 물러나 건널목 너머에서 사진을 남겨두었습니다.
건널목도 901호 못지않게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후일에는 아예 차단봉이 넘어가 버려서 외관상 영 좋지 못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 정도로 풍기역 근처에 있던 객차 휴게실, 그리고 지금도 남아있는 급수탑과 901호 증기기관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그나마 홍보물로 쓰이던 급수탑은 주기적으로 관리되는 인상이라도 있었지만,
객차 휴게실과 901호 증기기관차는 방치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심지어 901호 증기기관차 앞에 있던 영주시와 한국철도공사 경북본부 명의의 설명문은
다 벗겨지고 버튼도 빠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2025년에도 관리 상태는 똑같았습니다.
국내 최후의 증기기관차인 만큼 역사적 가치가 충분한 철도 유물이지만 당국의 대응이 매우 아쉽습니다.

이후 철도공원을 떠나 다시 풍기역으로 되돌아온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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