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모형이라는 취미는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합니다.
디오라마(Diorama)의 교통 요소 중 하나로 사용되지만
취미 분야로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 철도모형의 역사와 현실을 둘러보고
각종 철도모형 시스템과 활용사례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연속기획 - 철도모형 산업』을 준비했습니다.
그 첫 번째 글로 철도 창설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한국 철도모형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일부 부족하거나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1 최초의 기록 - 고종 앞에서 어전(御前) 시연을 보이다
1889년(고종 34년) 당시 외무아문 주사였던 이하영(1858~1929)은
미국에서 열차를 이용하며 철도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고
조선으로 귀국하며 따로 철도모형을 구해 왔습니다.
이하영은 모형을 고종과 대신들 앞에서 시연하며 철도 부설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후 1894년 공무아문에 철도국이 신설되고, 1899년에 경인선이 개통하게 됩니다.
이하영이 구해온 철도모형은 태엽을 돌려 작동하는 것으로
위 사진과 같이 증기기관차와 객화차, 레일로 구성되었는데
레일의 간격(궤간)이 약 18mm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현대 국제규격을 기준으로 보면 HO스케일(궤간 16.5mm)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하영이 구해온 철도모형은 장난감 기차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전기로 작동되는 현대식 정밀 철도모형은
1891년 독일 메르클린(Märklin)에서 판매를 시작했으니까요.
(철도박물관에 이하영의 사진이 철도창설 공헌자로 걸려 있었으나, 2016년 전시부스 개량으로 철거되었다.)
#2 실제와 95% 같았던 파시1-4288 증기기관차
일제강점기 시대인 1930년, 파시 1형 증기기관차 제작 기념으로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작창에서 철도모형을 제작하게 됩니다.
그 철도모형이 바로 철도박물관 로비에 전시된 파시1-4288 증기기관차입니다.
축적은 1/5로 X Scale(1:5.5)와 유사합니다.
실제 파시 1형 증기기관차를 그대로 축소해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을 태우고 달릴 수 있을 만큼 출력도 상당합니다.
제조 당시부터 파시1-4288 명판을 단 것은 아니고
1955년 해방 10주년 경축 산업 박람회 당시 창경궁에서 운행할 때에 붙여진 명판입니다.
파시1-4288호 증기기관차는 창경궁(당시 창경원)에서 운행하다가
1988년 의왕 철도박물관 개관 때 옮겨져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5인치 게이지(1:11) 이상 크기의 철도모형은 사람이 타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와 같이 석탄이나 경유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는 Live Steam으로 따로 칭한다.)
#3 1970~1980년대 : 국내 제조업의 시작과 철도박물관
1970년대에 국내 최초의 철도모형 제조사인 삼흥사와 아진정공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도 철도모형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에는 당시 세계 평균 기술수준인 라이트 점등과 컨트롤러를 지원할 정도로
기술의 발전을 이룩했고, 1990년대에는 해외에 OEM 수출을 하기에 이릅니다.
1988년에는 경기도 의왕시에 철도박물관이 개관했는데
본관 1층에 모형철도 파노라마, 즉 철도 디오라마가 선보였습니다.
오리엔탈산업에서 제작한 HO게이지(1:87) 축적의 디오라마로
가로 1,480cm, 세로 490cm에 레일 총 연장 289m(7개선)를 자랑합니다.
다만, 2021년 8100호대 전기기관차가 추가되기 전까지
디오라마를 운행하던 차량은 모두 외국형 철도모형을 재도색한 것이었습니다.
#4 1990년~2000년대 : 전문판매점의 등장과 IMF
1993년, 프라모델 등을 취급하는 동보실업(現 동보하비파크)이 설립되며
본격적으로 철도모형 전문판매점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의외로 동보실업은 당시 취미 잡지에 TOMIX 철도모형 관련 광고도 실으며
다소 적극적으로 철도모형 홍보 및 판매에 신경을 쓴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7년에는 IMF 경제위기가 찾아옵니다.
당시 한국 철도모형 산업은 수출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에
고환율(달러>원화)의 영향으로 경제위기의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국부라스가 대통령 표창(2000)과 1천만불 수출의 탑(2003)을 받는 등
철도모형 산업 분야에서 가시적인 상과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2004년에 삼흥사의 철도모형사업부가 폐지되었고
삼흥사 철도모형사업부에 재직하던 직원들이 타 제조사로 이동했습니다.
삼흥사 철도모형사업부 폐지에 즈음하여
샘모델테크(2002)과 지에스모형(2005), 한국정밀모형(2006)이 설립되었고
RMSE(2006)와 하비프라자(2007) 같은 전문판매사들이 설립되는 등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5 미완으로 남은 국내 최초의 양산형 철도모형
국내 최초의 양산형 철도모형은 철도창설 100주년이 되는 1999년에서야 등장했습니다.
철도청이 철도창설 100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전후동력형 새마을호 동차(이하 PP동차)로
선두차 2량과 객차 1량을 합쳐 총 3량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금속제 철도모형에 한정 판매라는 한계가 있었죠.
당시 100세트 한정으로 30만원에 판매되었지만, 추가 ‘일반판’이 생산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6 1990년대 후반~2014년 : 한국형 철도모형 판매에 들어가다
한편, 그 동안 철도모형 제조사들은 OEM 방식의 수출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철도가 이동수단, 여행문화 이상의 ‘취미’로서 인식된 시기가
200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관심이나 예상수요가 낮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0년대 말, 국내 철도모형 전문판매사들 중 하비프라자가
한국형 철도모형 제작을 목표로 코레일과 지식재산권 협약을 맺고 철도모형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2010년 5월에 국내 최초의 상업용 철도모형인 KTX, KTX-산천 선두차 모형(사진)을 출시하게 됩니다.
HO게이지(1:87)의 비구동형 철도모형인 이 제품들은 주로 철도유관기관이나
철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적당해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후 하비프라자는 DFG KOREA로 사명을 변경하고 철도모형개발부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전력으로 움직이는 구동형 철도모형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2013년 8월, 독일 ROCO사에서 OEM방식으로 수입해 한국형 사정에 맞게 수정한
HO게이지(1:87) 축적의 81, 8200호대 전기기관차가 출시됩니다.
국내 최초의 구동형 철도모형으로 철도동호인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외국형 기반이다보니 실제 차량과는 고증과 모양새가 다른 부분이 있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사실상 후신으로 여겨지는 맨땅모형에서 계속 발매하고 있기도 합니다.
#6 2015년~2019년 : 최초의 국산 한국철도모형과 새로운 시도들
제1회 코레일 철도문화전(2012)에서 철도모형 경진대회가 개최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부문 금상을 받은 모형이 한국형 철도모형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한국정밀모형의 EMD GT26CW-2 디젤전기기관차입니다.
금상 수상 후 한국정밀모형은 품질개선과 코레일과의 저작권 협의를 했고
고된 노력 끝에 2015년 9월, 최초의 국산 한국철도모형이 탄생했습니다.
3개 도색(코레일/한국철도/레일크루즈 해랑), 총 70량이 생산되었습니다.
브라스(황동) 재질에 세계 최초로 철도모형에 CNC 정밀연삭 공법을 적용한 수작업 철도모형으로
높은 정밀도와 뛰어난 고증, 그리고 165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모형 수집가들과 철도동호인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편, TPL(트레인몰)은 2018년 트레인플레이로 법인화했고
2019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N게이지(1:160) 한국철도모형 시제품을 공개했습니다.
통상 철도모형보다 길이가 반 정도 짧은 'B트레인' 규격의 차량으로서
트레인플레이는 양산 시 통상 철도모형과 같은 길이로 제작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2022년 12월 현재 추가 소식이 없어 개발이 무산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7 코레일 사내밴처기업과 펀딩 : KTX-산천 정밀모형
2019년, 제3회 코레일 철도문화제(대전역)에서
코레일 사내벤처기업인 디테일드케이가 제조사인 한국부라스, 그리고 펀딩포유와 함께
HO게이지(1:87) 축적의 KTX-산천 정밀모형 시제품을 공개했습니다.
디테일드케이는 펀딩포유와 협력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철도모형 판매에
인터넷에 상품 정보를 공개하고 투자(예약)를 받는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했습니다.
이후 양산에 들어가 2021년, KTX-산천 제품이 자사 온라인몰과 3개 철도모형 전문판매사를 통해 발매되었습니다.
제품은 플라스틱 차체를 채택하고, 실제 차량의 부품을 녹여 철제 부속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SOUND DCC(디지털제어)와 실내등 연동 등 여러 진보된 기술들을 적용함은 물론
한국철도모형 발매에서는 처음으로 2009세트 한정판으로 양산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8 2020년~2022년 : 멈추지 않은 새로운 시도
한국철도모형 중 객차 차종에 대한 개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철도모형 전문점 RMSE는 한국부라스와 협업해 리미트디자인 객차를
동년 6월에는 한국정밀모형이 1996년형 장대형 무궁화호 객차를 발매하기로 하고
각각 사전예약을 받았습니다.
리미트디자인 객차는 한국부라스가 내놓는 두 번째 한국형 모형이라 주목을 받았고,
장대형 무궁화호 객차는 한국정밀모형에서 처음 만드는 플라스틱 재질의 철도모형이지만
양산 시제품이 공개되자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1년 7월에는 용산 전자랜드에 입점한 철도모형점 더트레인(2016~)이
매장을 확장 이전하면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렌탈 디오라마를 설치했습니다.
렌탈 디오라마란 일본 철도모형점에서는 흔한 서비스 중 하나로
철도 디오라마를 노선별로 구분하고 이용시간에 따라 돈을 받는 형태입니다.
#9 마치며
한국의 철도모형 역사는 타 국가보다 짧은 편에 속합니다.
철도를 이동수단이 아닌 한 문화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되었고
고가의 취미로 취급되는 철도모형을 즐긴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하지만 철도모형 산업을 이루는 각 기업과 종사자 분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경로로 철도모형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 철도모형 시장(산업)이 앞으로도 더욱 발전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용자료 출처]
한국 위키피디아(이하영의 사진)
미국 위키피디아(태엽식 장난감 기차 사진, Lothar Spurzem 사용자)
한국철도공사 사보 《레일로 이어지는 행복 플러스》 제577호 中
《국내 최초의 구동형 철도모형이 나오기까지》 (일부 인용)
KBS 9시 뉴스 보도 (1997.9.2., 일부 인용)
2022.12.25.
ⓒ2022, Mirae(wmira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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