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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기/2014 - 내일로

[2014 내일로] #2 중앙선 야간열차의 추억 ~무궁화호 1623열차~

by wMiraew 2024. 12. 19.

청량리역 타는 곳 방향의 여객자동안내장치. 여러모로 바뀐 곳이 많다

전 편에 이어서…
일행들이 청량리역에 모두 모이자 간단한 식사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윽고 무궁화호 1623열차의 개찰*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내일로 여정의 막이 올랐습니다.

(*2009년 경부터 고속·일반철도는 개찰(改札)을 하지 않는다. '출발 15분 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함.)

 

 

 

출도착역부터 디젤전기기관차가 견인하는 야간열차 (무궁화 1623열차)

중앙선 청량리~부전 계통의 야간열차 중 하나인 무궁화호 제1623열차.
청량리역을 21시 13분에 출발하여, 부전역에는 다음 날 새벽 4시 9분에 도착하는 열차입니다.

다른 야간열차와 마찬가지로 전차선이 단전되는 시간대에 운행하기 때문에,

중간에 기관차를 바꾸지 않고 전 구간 디젤전기기관차가 견인했습니다.


무궁화호 객차는 카페객차 포함 6량이 연결되었는데 열차카페는 영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일로 시기 많은 내일러들의 명소로 자리 잡기도 했죠.

 

 

 

"막차"의 느낌이 있어서인지 제법 많은 이들이 야간열차에 올랐다

당시 1623열차는 서울에서 제천 이남의 단양·영주·안동·의성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제법 많은 승객들이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청량리~제천 구간은 이 열차 뒤에 태백선의 1661열차와 1641열차(야간)가 있었다)

 

 

 

양평역 정차 중

청량리 21:13(發) → 양평 21:44

야간열차는 왁자지껄하고 복잡한 연말의 분위기를 안고 청량리역을 출발했습니다.
무궁화호가 괜히 "급행" 등급이 아니라는 듯, 양평역에서 여러 사람들이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중앙선 원주역 정차 중. 구내에 시멘트 화물열차가 서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는 원주역 승강장

원주 22:17

당시 강원도의 입구 역할을 했던 원주역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교차했습니다.
대부분 배낭을 멘 여행객들이었죠.

야간열차가 계속 있었다면 국내 여행의 또 다른 경험으로 존재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지금이야 심야 고속버스가 야간열차의 자리를 대체했지만요...

 

 

 

중앙선 원주역 정차 중. 구내의 정자와 소나무가 눈에 띈다

제천 22:58

제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제천역은 역구내에 여러 채의 정자와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광천역(장항선), 상주역(경북선) 같은 느낌의 좋은 풍경이었지만 KTX가 정차하는 지금은 격세지감이 따로 없네요.

 

 

 

놀랍게도 정시운행 중인 야간열차 (제천역)

이런 와중에 야간열차는 무려 정시로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대에는 야간열차와 화물열차 외에 딱히 다니는 열차가 없는 점이 큰 것 같습니다.

참고로 당시 부전행 1623열차와 청량리역 1624열차는 봉림역에서 교행했습니다.

(1623열차 01:26 통과 / 1624열차 봉림역 01:25~26 정차)

 

 

 

선로에는 하얀 눈이 둘러지고, 창문은 얼어버리고.

2014 동계 내일로는 여행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일행들을 괴롭혔습니다.
비와 강풍, 연달은 한파는 출입문의 창을 얼리기에도 적합할 정도였습니다.

다들 객차 안에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다음 날 부산 영도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단양역 정차 중. 왼쪽의 역사는 2015년 경부터 철거하기 시작했다.

단양 23:17

 

픙기 23:44

중앙선 제천~영주 구간 역사(驛舍) 중 가장 빠르게 사라진 단양역과, 승강장부터 폐쇄된 풍기역입니다.
평소에는 중간의 단성, 소백사(희방사), 안정역 같은 곳에서 교행으로 발이 묶였지만 야간에는 그럴 일이 없죠.

야간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따스한 집으로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습니다.

 

 

 

후덥지근하고 잠이 몰려오는 야간열차의 풍경
여행의 동반자였던 우산, 물, 그리고 무지 수첩.

당시 내일로를 발권한 고객(내일러)에게 지역본부 차원에서 온갖 상품을 챙겨주었습니다.
본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내일러들이 적잖은 도움(?)을 받았었죠.

예로, 한때 경북본부는 영주역에 침대객차를 유치하고 내일러들에게 숙소로 내어주었습니다.
모 본부는 아예 연선의 대학교나 현업사업소와 연계해 숙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수도권동부본부는 역 스탬프를 날인할 수 있는 수첩과 여행용품을 챙겨주기도 했었네요.

그간 저는 내일로를 몇 번 떠나면서 우산과 물병, 보조 배터리, 무지 수첩은 반드시 챙겼습니다.
우산은 악천후, 물병은 갈증, 보조배터리는 휴대폰 방전, 무지 수첩은 역 스탬프 날인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죠.

 

 

 

중앙선 영주역 정차 중

영주 23:58 ~ 00:00

야간열차가 영주역에서 머무는 사이에 날짜가 하루 넘어갔습니다.
이렇게 날짜가 바뀌는 역이나 구간은 야간열차마다, 또 시간표 개정 시기마다 달랐습니다.
열차 안에서 날짜가 바뀌는 경험은 매번 새롭기만 합니다.

(1623열차가 폐지되기 직전에는 영주~안동 사이에서 날짜가 바뀌었다)

 

 

 

평소와 달리 바로 2번선에 정차시켰다

당시 중앙선 계통 열차들은 3·4번선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야간열차는 취급 상 편의 때문인지 역사와 맞닿은 2번선에 머물도록 해두었습니다.

지하통로를 따라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으니 좋네요.

 

 

 

영주차량사업소에 주박 중인 ITX-새마을호

2014년 11월부터 중앙선 새마을호가 폐지되고 그 자리를 ITX-새마을호가 채웠습니다.
영주~안동 구간에 전차선이 없기 때문에 시종착역이 영주로 바뀌고 주박도 영주차량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객차가 대다수였던 중앙선에 전기동차가 들어오는 것은 누리로 이후 처음인지라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단선전철 특성상 요금 대비 소요시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중앙선 안동역 정차 중

안동 00:30

하루가 지난 뒤 안동역에 도착했습니다.
복선전철로 이설되기 전이라 역명판에 운산, 아화역이 있는 점이 눈에 띕니다.

 

 

 

빈자리에 앉으니 잠이 몰려온다

안동역을 떠날 즈음에 주변을 돌아보니 졸거나 잠자는 사람이 꽤 많아졌습니다.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고지전을 해도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93년형 장대형 무궁화호 객차(이른바 '폭탄객차', 11561호) 객실 내부

한편, 이날 1623열차의 3호차와 5호차에는 특이한 객차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른바 '폭탄객차'로 불리는 1993년형 장대형 무궁화호 객차입니다.
좁고 손잡이 없는 좌석과 영 좋지 않은 승차감, 덜 휜 차체의 곡면, 개조된 승강문이 주된 특징이었습니다.
단부(통로) 측 출입문이 없고 양쪽 벽에 비드가 튀어나왔었죠.

 

 

 

11561호 객차의 통로 측. 출입문이 고장 난 듯 보이지만 아니었다

반자동(수동)문에서 자동문으로 교체된 흔적은 둘째치고 출입문이 고장 났다는 문구가 보입니다.
20년이나 된 객차이니까 잔고장 치레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영천역에서 멀쩡히 열렸습니다.

 

 

 

중앙선 의성역 정차 중. 황산화물열차가 영주를 향해 떠나고 있다

의성 00:57

이윽고 1시가 가까운 시간에 의성역에 도착했습니다.
야간열차가 의성역에 멈춰 서자 반대편에 서 있던 황산화물열차(3466열차)가 떠나가네요.

심야 시간대에 운행하는 화물열차는 날밤을 새는 경우도 있어 관계 철도직원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철도청 시기에 제작된 다큐멘터리에서도 다룬 적이 있었지요.
현재는 거점역에 정차한 뒤 숙박하고, 새벽에 다시 출발하는 시간표(행로)가 자주 쓰인다고는 합니다만...

 

 

 

중앙선 영천역 정차 중. 고장 났다던 출입문이 멀쩡히 열렸다(오른쪽)

영천 01:50

약 1시간 뒤에 영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첫 차가 올 때까지 쓸 일이 없는 반대편 승강장은 아예 불을 꺼버렸네요.

일행과 함께 '고장이 났다'라고 표시된 출입문이 멀쩡히 열려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웃었습니다.

 

 

 

중앙선 경주역(현 폐역) 정차 중

경주 02:27

그래도 영천역까지는 내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경주역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경주에 관광하러 온 거라면 이 시간대에 내릴 이유가 딱히 생각나질 않네요.

 

 

 

어둠 속을 달리는 야간열차 안은 고요했다
피로가 몰아치는 객실

그렇지만 야간열차가 텅 비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름 괜찮은 시간대에 서울과 부산을 이어주는지라 숙박비를 아낄 요령으로 타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G-STAR(국제게임전시회)나 부산국제철도기술산업전에 가기 위해,

KTX·새마을호·무궁화호(주간)를 마다하고 이 열차나 경부선 야간열차(1227열차)를 탄 용자들이 있었죠.

 

 

 

호계 02:55

호계역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는 건지 마는 건지 애매한 날씨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어둠 속의 가로등과 아스팔트 승강장, 지붕 같은 풍경이 야간열차의 낭만을 더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동해남부선 태화강역 정차 중. 황산조차가 보인다

태화강 03:05

 

동해남부선 기장역 정차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창 03:22 (촬영한 사진 없음)

기장 03:43

동해남부선을 따라 내려갈수록 빗방울이 굵어졌습니다.
기장역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이 우산을 펼쳐들 정도가 되었네요.

 

 

 

해 뜰 기미 없는 어두컴컴한 심야의 로컬선

태화강·남창·기장역은 지금 동해선 광역전철이 개통한 역들이라 보통/간이역 시기가 그립기만 합니다.
해 뜰 기미 없는 심야의 하늘을 밝히는 승강장의 가로등이 운치 있었습니다.

 

 

 

동해남부선 해운대역(現 신해운대역)을 떠나던 중

해운대 03:52

조금씩 정신을 차릴 도중에 해운대역(現 신해운대역)에 머물다 떠났습니다.
역명이 신해운대로 바뀌기 전까지 안내방송을 바꾸지 않아 구형 방송이 송출되었기도 하죠.

(해운대역 안내방송 듣기 【 YOUTUBE 】)


당시 해운대역부터 종착역까지 10여 분이면 닿기 때문에 짐을 다시 쌌습니다.

 

 

 

동해남부선 부전역 종착 직후
동해남부선/가야선 부전역 역명판

부전 04:09(終)

청량리역을 출발한 지 약 7시간 만에 종착역인 부전역에 도착했습니다.
열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습하고 찬 공기를 들이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은 역명판의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동해남부선은 센텀역, 가야선은 사상역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객차와 차내정리를 위해 움직이는 작업원
또 다른 하루를 향하여

승강장에는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과 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교차했습니다.
차량정리를 하려는 작업원도 좌석 시트를 들고 바삐 이동하고 있었네요.

 

 

 

야간열차는 익일 4~5시 사이에 종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도착시각 04시 09분"
야간열차가 사라진 지금, 새벽에 종착하는 열차는 임시·관광열차 외에는 없습니다.
04시가 표시된 전광판을 보며 '또 다른 여정을 시작되었구나'라고 되새기는 것도 이제는 할 수 없네요.

이렇게 생애 첫 야간열차 여행의 막이 내렸습니다.


 

[철도영상] 중앙선 무궁화호 야간열차의 추억ㅣ1623열차 (2014.12)

 

감사합니다.


 

 

2024.12.19.
ⓒ2024, Mirae(wmira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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